
대부업 사무실의 묘한 적막함
몇 년 전,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쳐서 소위 말하는 대부업체를 직접 찾아간 적이 있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곳인데, 사람이 급해지니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강남 어딘가에 있던 작은 사무실이었는데,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잔뜩 쌓여 있었고, 낡은 커피 자판기 소리만 가끔 웅웅거렸다. 직원들은 사무적이었고, 내 신용 상태나 직업 같은 걸 물어볼 때도 감정 하나 없는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사실 그게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상담사가 제시한 이자율은 연 20%였다. 법정 최고 금리라고 강조했지만, 그 숫자가 내 머릿속에서 얼마나 빨리 불어날지 계산이 서질 않으니 그냥 멍하니 서류만 들여다봤다.
대출 기록이 남는다는 공포
상담 도중 가장 고민했던 건 다름 아닌 ‘대출 기록’이었다. 대부업체 대출 기록이 한 번 남으면 나중에 제1금융권으로 돌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주변에서 하도 겁을 줘서였다. 실제로 그쪽 사무실에서는 ‘대부업대출조회’를 한 번만 해도 신용점수가 확 깎일 수 있다고 은연중에 압박했다. 대략 500만 원 정도가 급하게 필요했는데, 이걸 빌리면 나중에 신용회복이 가능할지, 아니면 이 굴레에 계속 갇혀 살게 될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 마침 대학원 다니던 후배가 생활비 때문에 대부업까지 알아보다가 채무 조정 신청했다는 뉴스를 봤던 게 기억났다. 군 장병들 대출 잔액이 444억이나 된다는 기사도 봤는데, 내가 지금 그 통계 안으로 들어가려나 싶으니 식은땀이 났다.
서류 검토만 두 시간, 결국은 포기
가져간 서류를 검토하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나는 사무실 구석 의자에 앉아 믹스커피를 세 잔이나 마셨다. 처음에는 상담사가 금방 끝날 것처럼 말했는데, 갑자기 대부중개업 문제나 사업자 대출 DSR 규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복잡하게 굴었다. 나중에는 내가 정말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인지조차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게 전략인지, 아니면 정말 절차가 복잡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중간에 서류를 회수해서 나왔다. 무엇보다 담보 없이 돈을 빌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업 이자율이 20%라는 게 단순히 숫자로 보이지만, 막상 갚아야 할 원금과 합쳐지면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찜찜함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돈을 구하지 못했다는 안도감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자금난 때문에 답답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때 나를 붙잡고 개인적인 연락처를 주면서 ‘대출 상담을 도와주겠다’고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사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정식 대부업체도 이 정도로 까다롭고 무서운데, 길거리나 커뮤니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결국 그날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신용점수를 확인하거나 대출 관련 광고를 볼 때면 그때의 그 조용한 사무실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찝찝하다.
여전히 남은 미해결의 숙제
결국 나는 지인들에게 빌려 조금씩 해결했다. 그게 훨씬 마음 편했다. 대부업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면 늪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매입채권추심업자가 연체 채권을 20조 원 넘게 가지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내가 그때 대출을 받았더라면 지금쯤 추심 전화에 시달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명확한 결론도 없고, 그저 운 좋게 넘긴 기억일 뿐이지만, 가끔 그때의 선택이 내 금융 인생을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