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대출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기운이 빠졌다

예술인 대출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기운이 빠졌다

서류 뭉치를 들고 창구에 앉았을 때

며칠 전 문득 통장 잔고를 확인하다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작업을 하려면 최소한의 비용이 드는데, 당장 다음 달 공과금이랑 재료비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하는 지원금은 이미 마감됐거나 조건이 까다로워서, 결국 대출을 알아봐야 하나 싶어 국민은행 창구를 찾았다. 사실 소상공인 창업 대출이나 정책 자금 같은 것들이 이름은 거창하게 붙어 있는데, 막상 내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참 묘했다. 창구 직원은 익숙하게 ‘사업자 등록증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예술인 증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그건 은행원에게는 그냥 종이 한 장일 뿐이었다. 신용 대출 대환 조건이나 이런 걸 물어보려다가도, 내가 과연 이 높은 이자를 감당하면서 창작을 이어가는 게 맞나 싶은 회의감이 먼저 들었다.

2금융권까지 기웃거려 본 심정

결국 시중 은행에서는 소득 증빙이 불규칙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씁쓸한 마음에 인천 소상공인 대출 관련 공고라도 뒤져보며 며칠을 보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국가지원사업들은 공고 기간이 너무 짧고, 내 상황이 ‘운영자금’으로 분류될지 ‘개인 신용’으로 분류될지 경계가 애매했다. 어떤 곳은 1%대 금리를 이야기하지만, 막상 신청하려고 보면 내 신용 점수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거나 필요한 보증서 발급이 복잡했다. 차라리 2금융권으로 눈을 돌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친구들은 말렸다. 이자가 무섭게 올라간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당장 오늘 내일 닥친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작업실 월세가 밀리는 상황이었다. 이게 진짜 예술을 하겠다고 버티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가난을 돌려 막기 하는 건지 경계가 흐릿해졌다.

예술활동준비금은 왜 항상 부족한 느낌인가

예술활동준비금 지원 제도가 있다는 건 다들 알지만, 이게 생계비로 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다들 암묵적으로 안다. 지침에는 벌금이나 대출 상환 같은 사적 채무 변제에는 쓸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출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는 예술가들에게 그 돈은 결국 어디에 쓰이게 될까. 창작 활동에 온전히 쏟아붓고 싶어도 현실적인 지출이 먼저 눈에 밟힌다. 얼마 전 뉴스에서 김동연 지사가 경기도 극저신용대출 간담회를 했다는 기사를 봤다. 누군가는 기회 소득을 말하지만, 당장 내 통장의 마이너스를 채우기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500만 원, 1,000만 원. 이 정도 한도의 대출을 알아보면서 내 예술적 가치가 고작 이 수치 안에서 계산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찌릿했다.

대환대출 조건이라는 거대한 벽

지금 가지고 있는 채무를 조정해서 대환대출을 해보려 해도 조건이 너무 많다. 6개월 이상 영업을 했는지, 소득 신고가 매달 규칙적으로 찍히는지. 예술 활동의 특성상 일감이 몰릴 때가 있고 쉴 때가 있는데, 은행 시스템은 그런 건 고려해주지 않는다. NH농협은행에서 농업 금융부와 연계해 사업 계획서 작성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과연 나 같은 사람의 계획서가 대출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들었다. 나중에 미술품이나 저작권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제도가 정착될 거라는 희망 섞인 기사도 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먼 미래의 일 같다. 당장 내일 아침에 들어올 작업실 월세 입금 알림이 더 현실적인 공포니까.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

결국 이번에도 별다른 대책 없이 그냥 돌아왔다. 국민은행이든 인천시 지원금이든, 내가 신청할 수 있는 건 대부분 ‘성실하게 사업을 영위하는 소상공인’을 위한 것들이었다. 나는 예술을 한다고 하지만, 사회적인 틀에서는 그저 소득이 불안정한 개인일 뿐이다.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게 나은지, 아니면 당분간 창작을 멈추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지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답이 없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오늘도 텅 빈 통장을 보며, 왠지 모르게 한숨만 푹 쉬고 만다. 지원금은 지원금이고, 내 빚은 내 빚이니까.